Dienstag, 25. Februar 2014

앙겔라 와 근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은  지난 9 선거에서 기민당이 최다수 득점 당이 됨으로써   3  수상직을 맡게 된다그야말로 장기 집권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 집권의 후유증인 반대 여론이나 인기의 하락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이제야 본격적으로 그녀의 저력이나  능력을 인정하면서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그녀의 정치 후견인이였던   수상의 얌전한 소녀라는 상표가 오랫동안 그녀를 따라 다녔지만  이젠 세계정치를 요리하는  안되는 존재들 속에 으젖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맡은바를 묵묵히 해내는 그녀는 우선 일체의 부정부패 또는 사생활 관계로  구설수에 올라온 적이 없다전형적인 독일 관료의 청렴결백함을 소지하고 있는 현대 정치인들 중에 많지 않은  표본이다그녀의 과거나 사생활에서 꼬투리를 잡아 내려는 시도들이 당연히 있었겠지만 지금껏 한껀도 알려진 것이 없다.  과거 동독시절 부터 당과는 상관없이 자유로운 사상을 가지고 행동하는 양심이였다는 사실,  목사의 딸이면서 자연과학자 출신이라는 경력역시 자연과학자인 남편과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면서 사적으로  어떤 스캔들에도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녀에게  가산점이 되고 있을 뿐이다.


상당한 물의 끝에 불명예스럽게 퇴출당한 볼프  대통령의 추문과 비리역시 사임당한  구텐베르크  국방 장관의 논문 표절 사건과 그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 독일 정치판에 나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비리나  시비와는 별개의 세계에 그녀는 말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유모어도 없고 훌륭한 웅변가도 아닌 그녀는 비록 재미는 없지만 언제나 한결같은 발언들을 한다.   내용은 없지만 크게 논란의 소재를 제공하지도 않는  모나지 않는 연설과 언사들이다.  그럴 때면 아직도 약간의 수줍음을 띄는듯한 시골스러움이 풍겨나고  옷차림도   똑같이 눈에  거슬리지 않게 입는다한동안 독일 사람들의 웃음꺼리까 되곤했던 그녀의 단발머리 헤어스타일도 해를 거듭하면서 이제  많이 세련되었다다만   때마다  손을 모우고  엄지와 깍지를 맞대는 습관은 여전히  정치 풍자 극에서 즐겨 애용되고 있고 있다비록 그녀의 순진함 또는 촌스럼움을 개그의 소재로 만들고는 있지만  여늬 이웃집 아주머니와 다름없는  그녀의 수더분한 표정이나 검소함은  누구에게도  웃음꺼리가  아닌바로 그녀가  존경과 사랑을 받게되는 가장  미덕이다자신의 똑똑함을 결코 내세우지 않으면서 일체의 교만이나 현명함으로 상대방이나 국민을 교육하거나  내려 씌우지 않는 자연스런 태도는 보통사람들  국민들과 가까워지는 지름길이 되고 있는듯 하다.  실제 그녀는 시간이 나면 요리를 위해  일반 슈퍼에서 시장을 보기도 하는둥토요일 오후면 감자국을 요리하는  독일 평균 주부와   차이 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제 그녀는  독일 국민의 어머니가  셈이다.
복잡한 정치와  여러 정당들을 마치 자식들 챙기듯이  골고루 달래고 아우러 나가는 억척같은 어머니가 되었다독일 사람들은 요사이  유로 위기 속에서 경제문제며 난민들의 수용문제그리고 에너지 문제와 환경 등의 미래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에 당면하여  앙겔라가 어련히 알아서  것이다  엄마가   해줄꺼야걱정말자.. „하는 태도로 편하게 회피해 버린다.  이건 사실상 그녀에 대한 전적인 신뢰다.
유럽 연합경제사회난민다문화,  환경문제  너무도 복잡한 사안들에  직면하면 보통 사람들은   내용을 꿰뚫어  수가 없이 금방 좌절하고 포기해 버린다뿐아니라 문제점들을 단순화 시키려는  안일함을 선택한다.  심리적으로  현대인들은  현실 정치가들에  실망하고 식상해 있기에  거미줄 처럼  겹겹이 늘어진  너머의 세계정치 내면을 관통할 수가 없다 .한발짝 내딛기 전에  오히려 움추리고 단말마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은 현대인 심리를 가장 억누르는 가장  요소이다.  오바마가 사람들을 한동안 열광하게  하였던 것은 바로 그런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자신있고 능력있는 신선한 정치인을 사람들은 은연중 갈망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독일의 경우 직선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인의 인물 됨됨이나  이미지가  결정적인 역활을 하지는 않지만  앙겔라가  주는 이미지가 사람들로 하여금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것이 그녀의 최대 강점이다그녀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인가는 그다지 중요치가  않다다만 그녀가 동독 시절에 보여준 저항의 경력과  험난한 정치계를 뚫고 우뚝서기 까지 그녀의 용기와 인내를 사람들은 존경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그녀가  착실하고 현명하게  최선을 다해 주리라는 기대와 희망의 심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콜의 그림자 밑에 서있던  착한 소녀 앙겔라가 독일 국민의 엄마 노릇을 하게  만큼 성장할  있을지는 과거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기민당에서 마땅히 내세울 사람이 없었던  초선 당시에 사민당 수상 슈뢰더의 대항마로 나온 그녀가 차기 수상이 될지를  실상 아무도 가늠하지 못했다대부분이 그녀를 대단치 않게 여겼고그녀에게 잠재된 끈질긴 승부수를 예견하지 못했다또한 그녀의 단순 솔직한  표현이 국민들에게 쉽게 호소력을 가질  있다는 것을  야당이나  노련한 정객들은  오판했었다이제 야당도 녹색도 좌파도 그녀의 넓은 품안에서 놀고 있는 격이  되었다.

나는 지난   대선 직전까지 우연히 서울에 머물게 되었다대한민국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수도 있다는 것은 여성운동 측면에서   아무튼 대단한 발전이 아니냐는 질문을 만나는 사람마다  던져 보았다그럴  마다   질문은 일축되었다.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대한민국은 아직도 유럽만큼 여성해방이 되지않은 가부장적인 나라입니다비록 정치적으로 보수정당을 찍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지는 않는다라는    사회의   가부장적 장애물을 넘지는  못할 겁니다. „ 나는  답변들에 동의와 안도를 얻곤 했다그러나  내가 만나지 못한  반대편의 사람들이나  특히 새누리당  몰표가 나온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이미 여성이 아니라   핏줄이라는  인식이 지배하였다는 것을 불행히도 간과하였다.

그러기에 실상은 여성이라는 잦대로 비교를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인지 모르나 앙겔라와 박근혜는 피상적으로 일연의 공통점을 가진   여성임에는 틀림없다연령대가 거의 비슷하고둘다 자연과학도 였고한쪽은 재혼녀,다른 쪽은  미혼의 독신녀로서   자식이 없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상반된 출신 성분이 빚어내는 정치는 독일과 한국이라는  나라의 상이한 사회상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메르켈 수상이 앙겔라 라는 애칭으로 너도나도 즐겨 불르는 것과는 달리  시절 공주였던 박근혜는 이제 여왕이 된듯한 착각속에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앙겔라의 수더분한  옷차림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식적인 맞춤형 스타일과는 엄청 차이가 난다그러나 어디  복잡한 세계 정치가 폐션 외교의 힘으로 풀릴 수가 있겠는가.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기꺼이 양두구육의 탈을 쓰고  나오는 각축장에서 옷차림에만  신경쓰는 여성 대통령이란,  잘못하면 그저 눈요기 꺼리나 웃음꺼리 밖에  되지 않는다.
앙겔라를 후원하는  하나의 막각한 지원병은 그의 남편인 자우어 박사이다점잖은 물리학자 답게 그는 거의 공적인 등장을 자제하고   피치못할 외교좌석에만 가끔씩 출연하지만  절제와 품위로 앙겔라의 믿음직한 후광이 되어주고 있다그에 비해 우리 대통령의 주변에는 생색을 내려는 수준없는 무수한 남정네 정치인들이 계속 스캔들과 추태로 험집내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비록 박근혜 대통령이 미혼이라서  든든한 동반자가 없다는 것은 유감이지만  여성정치인의 장점인 부드러움과 모성을  십분 발휘했으면 좋겠다앙겔라도 자식이 없으니 자식을  두어야만 어머니의 자애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시여,
유신의  바람을 세우던  매서운 눈의 아버지와는 이제 결별하고그나마 독재 기간 동안 유일한 한가닥의  희망이 되기도 했었던  그러나  비극적으로 유명을 달리한 당신의 어머니 모습을 차라리 닮으십시요아버지가 저지른 독재의 만행앞에 무릎꿇어 사죄하면서 가족안의 야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졌던(그것이 얼마나 진실된 사실인지는 모르지만어머니의 유훈을 이어 받으십시요.
갈라지는  민심들을 거두어 주고 국민들의 불만 표출을 해소하고 반쪽난 정국을 싸잡아 안는 용단을 내리십시요우는 아이를 매질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눈물을 닥아주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자한 어머니가 되십시요자신들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안달하고 아부하는 측근들을 도려내는 과감한 인사행정을 하십시요.   늦기 전에  과거와 당신 아버지의 어두운 그림자와  분연히 결별하고 새롭게 태어 나십시요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으로 포용을 하십시요 것만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박근혜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남을  있는 유일한  입니다아니면  아버지에  딸인 근혜가  뿐입니다.

2013 12 7 베를린






Samstag, 30. November 2013

Novemberwetter


독일 사람들이 가장 고약한 날씨를 지칭할   <11 날씨같다고 한다.
오늘이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우울과 고독을 노래한 숱한 시들과 문학작품들을 구태여 탐독하지 않아도
끝이 보이지 않게 낙옆이 깊게 쌓인 길이며  희뿌연 안개를 뿌리며 살갗을 축축하게 적시는 겨울이 닥아서면  적어도 11월을 원망하는 한편 정도를 읊조려야 살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운이 좋으면 황홀한 가을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는  <황금의 10> 비해 11월은 결코 환영받는 달이 아니다. 하늘과 땅이 모두가 하나의 색갈인 쟂빛이 되어  을씨년스런 비까지  내리는 11월의 독일 날씨, 가을의 마지막 자락은 정말 음울하기 짝이 없다.

1938 나치들이 유태인 상점들을 박살내고 유태 교회당을 방화하던 밤도 바로 이렇게 음울하기 짝이 없는 11 이였다. 희생된 망령들의 원한과 통곡이 짙은 안개에 저며들어 몸을 죄는 듯한 전율과 절망이 울적한 날씨를 더욱 견디기 어렵게 한다.
올해는 <포그롬Pogrom> 75주년이 되어 전국적으로  당시의 만행을 기억하고 경고하는 많은 행사와 집회가  계속 진행중이다. 11 9일에는  베를린 시장과 유태인 중앙위원회장, 신구교 교구장 등을 선두로 침묵의 행진이 있었는데, 현수막에는< 기억하자, 추모하자, 함께가자 >라는 구호였다.

1938 11 9일은 <제국의 포그롬> 혹은 < Reichskristallnacht제국의 수정의 >이라고 불리우는데 나치 정권의 유태인 종식(말살) 정책의 분기점이 날이다.  이미 1933 부터 유태인 법이 만들어졌지만  실지 그들에 대한 본격적인 학살이 시작된것은 부터였다.   난데없이 닥친 나치 친위대는 유태인들의 상점들을 약탈하고 유태인 교회당에 방화를 자행하였다. 전국에 걸쳐 유태교 회당의 절반가량인 1400곳이 파손되었고 11 7일에서 13 사이에  적어도 400명의 유대인들을 학살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산산히 깨져 흩어진 상점 유리창 조각들을 수정에 비유해서  < 수정 크리스탈의 >이라고 지칭하였다 ! 결코 미화해서는 아니될   명칭의 저변에는 나치들의 철저히 계산된 정신심리가 고스란히 베여있다고 하겠다.
울부짖고 끌려가는 희생자들과는 아랑곳없이 상점 유리창 파편들이 가로등에 반짝이는 광경을  크리스탈의 빛남으로 연상한 것은  두가지로 유추 분석 볼수 있다. 하나는 크리스탈이라는 보석과 재물의 연상은 앞으로  자행할  유태인 재물의 탈취를  예고한 것이다. 둘째는 아리안 민족의 순수함을  맑은 수정에 비유한  인종 순혈 주의에서 연유했을 일수도 있겠다.

40 이상을 사는 독일이지만  유태인 학살이라는 인류 초유의 만행과  연관지을 때마다.독일내지 독일 인들에 대한 생소함과 괴리감은 떨구치기가 어렵다.
베를린의 남쪽 아름다운 호수 반제  (Wannsee) 위치하는  별장에서 1942 유태인 최종말살안이 결정되었기에 그곳을 지날 마다 현재의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이 마치 허깨비를 보는양 소화하기 힘든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런 끔찍한 독일의 과거사는 풍요롭고 평화스러운 전후세대에겐 선조들로 물려받은 악몽이고   현재의 독일을 사는 외국인들에겐  믿어지지 않는 수수꺼끼 같으다.  일상에서는 망각하고 살다가도 독일의 과거 청산을 위한 노력을 도처에서 만날 마다  새삼 불편한 진실과 다시금 맞딱드리게 된다. 과거청산은 강력하고 민주적인 사회와 유럽을 이끄는 모터로서 오늘날의 독일을 존재케하는 근거라고  하겠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을 선두로 나치와 그에 부역한 사람들의 처벌, 동방정책으로 과거 점령국에 대한 사과와 보상, 유태인 학살에 대한 배상과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 라는 정치적인 틀뿐아니라 거의 생활화 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희생된 유태인들의 옛집 앞에 그들의 이름을 적은 팻말을 걸거나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망일을 각인한 황금색의 작은 돌을 보도에 박아 넣은 이른바 <발부리에 채이는 걸림돌Stolperstein> 만들어서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하는 식으로 일상화 하고 있다.  학교에서  역사 교과서는 물론 다양한 시청각 교육과 일반 언론및 방송에서 끊임없이 방영하는 기록물과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인터뷰등은  독일인들에겐  지울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있음을 알게한다.

물론 신나치들의 출현과 극우당의 존재는 독일의 과거청산 문제는 아무리 강화해도 부족하다는 것과  지속적으로 해야함을 상기시키고 있지만  역사를  깡그리 왜곡하고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일본의 태도에 비하면 당연히 우등생이고 본받아 마땅하다. 독일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일본인들의 과거 청산문제나 역사인식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식밖의   이지만 우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을 비판하기 앞서서 스스로의 역사 정립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하지 않을까?   간단히 말해서 친일의 잔재는  전쟁과 독재를 이어서 지금까지 한국 지배층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사 정리는 민주정부 시대에 와서야 겨우 시작단계에 들어 섰지만  불행이도 기간에 그나마 이루어진 성과는  현실정치의  와중에 가려져서 거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세간의 빛을 보지 못하였다.  왜곡된  역사 바로 잡거나 국민의식 교육에 결정적인 역활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결과가 바로 지금의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가능하게 것이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대통형이 있었던 그녀가 이끄는 정부를 탄생시킨 지난해 선거는 한국인의 역사 의식 내지 과거청산이라는 숙제를 푸는데 미숙함, 아니 무능력함을 총체적으로 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자면, 네델란드 왕비가 과거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에 복무하던 장관의 딸이라는 소위 출신성분 때문에 결혼 전에  네델란드 의회에서 동의를 얻지 못하게 되자 공식 결혼식에 신부의 아버지를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상기해 보자. 작은 일화를 비교의 저울에 올린다면  박근혜가 비록 출중한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독재자의 딸이라는 사실은 결코  그녀가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서도, 될수도  없다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탈선해서는 아니되는 공공의 도덕이 지켜지는 민주주의 국가와  국민들의 건강한 역사의식이 작동한다면 그런 사태는 처음부터 있을수가  없는 일이다.  지금 그래서 우리는 불행한 결정의 부작용을 도처에서 직면하고 있지 않는가.

독일은 전쟁과 더불어 분단이라는 상처를 딛고 1989 11 9, 바로 1938 11  포그롬이 있었던  51 ,   같은 밤에 동서 냉전의 상징이던 장벽이 붕괴되었다. 통일로 넘어가는 가는 대로가  환히 뜷린 것이다. 1989 11 9, 동독 공산당 서기 귄터 샤보브스키 (Günther Schabowski) 동베를린에서 세계 기자들 앞에서 동독시민들이 서독을 비롯하여 외국으로 자유롭게 여행 있다는 새로운 법규정을 발표하였다. 발표후 이어서 봇물처럼 터진 환호성과 흥분은 동베르린에서 서베를린의 거리를  향해 휩쓸었다.  수많은 동독인들의 물결은 당시 세베를린의 중심 상가인 쿠담으로 흘렀고 사람들은 아무나 서로를 껴안고 기쁨의 눈물들을 흘렸다. 그날의 티비에 비치던 독일인들의 감격에 모습들은 잊을 수가 없다.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을 절제하는 독일인들의 격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를 울린다. 독일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 우연하게도 같은 날에 일어 났다는 것은 독일인에겐 행운이고  분단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에겐  부러움과 자책을 안긴다
인류에서 가장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독일이 영원히 분단의 고통을 누려도 죄값을 하지 못할텐데 우리민족이 제일이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를  60년을 넘게 불르는 우리를 제치고 번듯이 그것도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통일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감격을 함께 즐기기전에  본능적으로 이건 정말 너무 공평하지 않다 라는 투정이 앞섰다그러나  목이 쉬라고  부르는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는 노래는 이미 내용을 상실 내지 망각해 버린  말과 체면의 남발만이 되어버린 거는 아닌지. 과연 우리는 조용히 내적으로 실제 민족 사랑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실천을 것일까세계에서 마지막 분단국이란 치명적인 위상을 여전히 철통처럼  지키고 있는 그야말로 못난 우리 민족에 대한 자괴감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자 통일 독일로 진행되는  감격의 날들이 연이어졌다. 과거 분단시   베를린의 시장이였던 빌리 브란트 수상의  주름진 얼굴이 감동에 차서 티비 화면에 비쳐올 때는 더욱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장벽의 허물어진 앞에서 그는 바르샤워에서  나치 독일의 과거를 청산하러 무릎을 꿇던  브란트 수상이 아니라  한사람의 독일인이 되어서 사랑하는 조국의 통일 목전에 두고 벅차 하던 모습이였다. „원래 하나였던 것은 결국 함께 자라게 된다.“.. 라는 그의 문장들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지난해 나는 오랫만에 고향의 가을을 만끽했다. 청명한 하늘에  날라갈듯 상쾌한 날씨를 자랑하던 11, 고향 땅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은 충동에 이거리 저거리를 누비고 다녀 보았다. 그러나   해말간 하늘 아래  독일의 11 날씨보다 음울하고 잔인한 우리의 분단역사가  여전히, 도처에서,  진행형임을 모르는 해버릴 없어서 끝내 행복하지 못했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들은 전혀 치유되지 않은채 트라우마가 되어 있고  희생된 수많은 망령들은  분단의 철조망에 걸린채  아직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훨훨 나르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굿이라도 한판 해야하지 않을까.

이번 주초에는 이란과의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뉴스가  시간마다 뉴스로 뜨고 있다.
한번  뒷통수를 치는것 같다. 북핵문제는 결국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 다시 한번 들어 나면서 남북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는 새삼 절박하게 한다.  전쟁과 독재에 희생된  수많은 원혼들을 달래 분단의 장벽은 전혀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반도를 둘러싼  어두운 그림자가  도무지 우울을  가시지 않게한다.

1130일오후4, 벌써 부터 어둠이 깔리고  비는 하루종일 뿌리고 있다.  1989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함성속에  잠시 사라졌던 1938 11 포그롬의 원한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착각속에 오한과 공포가 서려드는  날씨다

2013 11 30, 베를린  
Pieter Bruegel der Ältere, 1565 »Heimkehr der Her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