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은 지난 9월 선거에서 기민당이 최다수 득점 당이 됨으로써 곧 3번 째 수상직을 맡게 된다. 그야말로 장기 집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 집권의 후유증인 반대 여론이나 인기의 하락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이제야 본격적으로 그녀의 저력이나 능력을 인정하면서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그녀의 정치 후견인이였던 콜 전 수상의 얌전한 소녀라는 상표가 오랫동안 그녀를 따라 다녔지만 이젠 세계정치를 요리하는 몇 안되는 존재들 속에 으젖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맡은바를 묵묵히 해내는 그녀는 우선 일체의 부정부패 또는 사생활 관계로 구설수에 올라온 적이 없다. 전형적인 독일 관료의 청렴결백함을 소지하고 있는 현대 정치인들 중에 많지 않은 한 표본이다. 그녀의 과거나 사생활에서 꼬투리를 잡아 내려는 시도들이 당연히 있었겠지만 지금껏 한껀도 알려진 것이 없다. 과거 동독시절 부터 당과는 상관없이 자유로운 사상을 가지고 행동하는 양심이였다는 사실, 목사의 딸이면서 자연과학자 출신이라는 경력, 역시 자연과학자인 남편과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면서 사적으로 그 어떤 스캔들에도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녀에게 큰 가산점이 되고 있을 뿐이다.
상당한 물의 끝에 불명예스럽게 퇴출당한 볼프 전 대통령의 추문과 비리, 역시 사임당한 폰 구텐베르크 전 국방 장관의 논문 표절 사건과 그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 등, 독일 정치판에 나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비리나 시비와는 별개의 세계에 그녀는 말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모어도 없고 훌륭한 웅변가도 아닌 그녀는 비록 재미는 없지만 언제나 한결같은 발언들을 한다. 큰 내용은 없지만 크게 논란의 소재를 제공하지도 않는 즉 모나지 않는 연설과 언사들이다. 그럴 때면 아직도 약간의 수줍음을 띄는듯한 시골스러움이 풍겨나고 옷차림도 늘 똑같이 눈에 거슬리지 않게 입는다. 한동안 독일 사람들의 웃음꺼리까 되곤했던 그녀의 단발머리 헤어스타일도 해를 거듭하면서 이제 많이 세련되었다. 다만 말 할 때마다 두 손을 모우고 엄지와 깍지를 맞대는 습관은 여전히 정치 풍자 극에서 즐겨 애용되고 있고 있다. 비록 그녀의 순진함 또는 촌스럼움을 개그의 소재로 만들고는 있지만 여늬 이웃집 아주머니와 다름없는 그녀의 수더분한 표정이나 검소함은 그 누구에게도 웃음꺼리가 아닌, 바로 그녀가 존경과 사랑을 받게되는 가장 큰 미덕이다. 자신의 똑똑함을 결코 내세우지 않으면서 일체의 교만이나 현명함으로 상대방이나 국민을 교육하거나 내려 씌우지 않는 자연스런 태도는 보통사람들 즉 국민들과 가까워지는 지름길이 되고 있는듯 하다. 실제 그녀는 시간이 나면 요리를 위해 일반 슈퍼에서 시장을 보기도 하는둥, 토요일 오후면 감자국을 요리하는 독일 평균 주부와 별 차이 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제 그녀는 온 독일 국민의 어머니가 된 셈이다.
복잡한 정치와 여러 정당들을 마치 자식들 챙기듯이 골고루 달래고 아우러 나가는 억척같은 어머니가 되었다. 독일 사람들은 요사이 유로 위기 속에서 경제문제며 난민들의 수용문제, 그리고 에너지 문제와 환경 등의 미래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에 당면하여 „앙겔라가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이다. 즉 엄마가 다 잘 해줄꺼야, 걱정말자.. „하는 태도로 편하게 회피해 버린다. 이건 사실상 그녀에 대한 전적인 신뢰다.
유럽 연합, 경제, 사회. 난민, 다문화, 환경문제 등 너무도 복잡한 사안들에 직면하면 보통 사람들은 그 내용을 꿰뚫어 볼 수가 없이 금방 좌절하고 포기해 버린다. 뿐아니라 문제점들을 단순화 시키려는 안일함을 선택한다. 심리적으로 현대인들은 현실 정치가들에 게 실망하고 식상해 있기에 거미줄 처럼 겹겹이 늘어진 저 너머의 세계정치 내면을 관통할 수가 없다 .한발짝 내딛기 전에 오히려 움추리고 단말마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은 현대인 심리를 가장 억누르는 가장 큰 요소이다. 오바마가 사람들을 한동안 열광하게 하였던 것은 바로 그런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자신있고 능력있는 신선한 정치인을 사람들은 은연중 갈망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독일의 경우 직선제가 아니기 때문에 한 정치인의 인물 됨됨이나 그 이미지가 결정적인 역활을 하지는 않지만 앙겔라가 주는 이미지가 사람들로 하여금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것이 그녀의 최대 강점이다. 그녀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인가는 그다지 중요치가 않다. 다만 그녀가 동독 시절에 보여준 저항의 경력과 험난한 정치계를 뚫고 우뚝서기 까지 그녀의 용기와 인내를 사람들은 존경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그녀가 착실하고 현명하게 최선을 다해 주리라는 기대와 희망의 심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콜의 그림자 밑에 서있던 착한 소녀 앙겔라가 독일 국민의 엄마 노릇을 하게 될 만큼 성장할 수 있을지는 과거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기민당에서 마땅히 내세울 사람이 없었던 초선 당시에 사민당 수상 슈뢰더의 대항마로 나온 그녀가 차기 수상이 될지를 실상 아무도 가늠하지 못했다. 대부분이 그녀를 대단치 않게 여겼고, 그녀에게 잠재된 끈질긴 승부수를 예견하지 못했다. 또한 그녀의 단순 솔직한 표현이 국민들에게 쉽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야당이나 노련한 정객들은 오판했었다. 이제 야당도 녹색도 좌파도 그녀의 넓은 품안에서 놀고 있는 격이 되었다.
나는 지난 해 대선 직전까지 우연히 서울에 머물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수도 있다는 것은 여성운동 측면에서 볼 때 아무튼 대단한 발전이 아니냐는 질문을 만나는 사람마다 던져 보았다. 그럴 때 마다 내 질문은 일축되었다.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유럽만큼 여성해방이 되지않은 가부장적인 나라입니다. 비록 정치적으로 보수정당을 찍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지는 않는다라는 즉 이 사회의 더 큰 가부장적 장애물을 넘지는 못할 겁니다. „ 나는 그 답변들에 동의와 안도를 얻곤 했다. 그러나 내가 만나지 못한 반대편의 사람들이나 특히 새누리당 몰표가 나온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이미 여성이 아니라 한 핏줄이라는 인식이 지배하였다는 것을 불행히도 간과하였다.
그러기에 실상은 여성이라는 잦대로 비교를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인지 모르나 앙겔라와 박근혜는 피상적으로 일연의 공통점을 가진 둘 다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연령대가 거의 비슷하고, 둘다 자연과학도 였고, 한쪽은 재혼녀,다른 쪽은 미혼의 독신녀로서 둘 다 자식이 없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상반된 출신 성분이 빚어내는 정치는 독일과 한국이라는 두 나라의 상이한 사회상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메르켈 수상이 앙겔라 라는 애칭으로 너도나도 즐겨 불르는 것과는 달리 한 시절 공주였던 박근혜는 이제 여왕이 된듯한 착각속에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앙겔라의 수더분한 옷차림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식적인 맞춤형 스타일과는 엄청 차이가 난다. 그러나 어디 이 복잡한 세계 정치가 폐션 외교의 힘으로 풀릴 수가 있겠는가.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기꺼이 양두구육의 탈을 쓰고 나오는 각축장에서 옷차림에만 신경쓰는 여성 대통령이란, 잘못하면 그저 눈요기 꺼리나 웃음꺼리 밖에 되지 않는다.
앙겔라를 후원하는 또 하나의 막각한 지원병은 그의 남편인 자우어 박사이다. 점잖은 물리학자 답게 그는 거의 공적인 등장을 자제하고 피치못할 외교좌석에만 가끔씩 출연하지만 절제와 품위로 앙겔라의 믿음직한 후광이 되어주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 대통령의 주변에는 생색을 내려는 수준없는 무수한 남정네 정치인들이 계속 스캔들과 추태로 험집내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비록 박근혜 대통령이 미혼이라서 든든한 동반자가 없다는 것은 유감이지만 여성정치인의 장점인 부드러움과 모성을 십분 발휘했으면 좋겠다. 앙겔라도 자식이 없으니 자식을 꼭 두어야만 어머니의 자애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시여,
유신의 칼 바람을 세우던 그 매서운 눈의 아버지와는 이제 결별하고, 그나마 독재 기간 동안 유일한 한가닥의 희망이 되기도 했었던 그러나 비극적으로 유명을 달리한 당신의 어머니 모습을 차라리 닮으십시요. 아버지가 저지른 독재의 만행앞에 무릎꿇어 사죄하면서 가족안의 야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졌던(그것이 얼마나 진실된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어머니의 유훈을 이어 받으십시요.
갈라지는 민심들을 거두어 주고 국민들의 불만 표출을 해소하고 반쪽난 정국을 싸잡아 안는 용단을 내리십시요. 우는 아이를 매질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눈물을 닥아주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자한 어머니가 되십시요.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안달하고 아부하는 측근들을 도려내는 과감한 인사행정을 하십시요. 더 늦기 전에 과거와, 즉 당신 아버지의 어두운 그림자와 분연히 결별하고 새롭게 태어 나십시요.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으로 포용을 하십시요. 그 것만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 입니다. 아니면 그 아버지에 그 딸인 근혜가 될 뿐입니다.
2013년 12월 7일 베를린